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아프가니스탄 관련 자료

지난 6월 16일(미국 시간)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이명박과 오바마는 한미동맹을 한반도를 벗어나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하자며 ‘한미동맹 공동비전’을 발표했습니다. ‘한미동맹 공동비전’에는 “한미동맹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평화유지와 전후 안정화, 그리고 개발 원조에 있어 공조를 제고할 것”이라며 아프간 재파병 여지를 열어 놨습니다. 지난해 말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철수하면서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이하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해소됐지만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활동할 당시 만든 자료들 중 아프간 재파병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도움이 될 자료라고 판단해 글을 게시합니다. 아래 내용은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동의·다산 부대에 관한 자료입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제작한 <철군을 위한 약식 보고서>에서 아프가니스탄 파병 부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보고서 전체 내용은 파일로 첨부합니다.


아프가니스탄

1) 철저하게 숨겨진 아프간 다산 동의부대 파병 업무들.

○ 2007년 2월 27일 아프간 바그람 기지에서 폭탄 공격으로 돌아가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을 통해서 철저하게 숨겨진 아프간 다산 동의부대 파병 업무들에 여러 의혹들이 제기됨.

○ 미군의 불법적인 고문과 학대가 자행돼 온 아프간의 바그람 기지는 관타나모 기지로 이감할 수감자들을 억류하는 수용시설로도 활용돼 왔고 수감자에 대한 불법적인 고문과 학대가 자행되어 왔던 곳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 실제로 바그람 기지 내에서 2명의 고문치사 사건이 드러나 유엔고문방지위원회의 보고서에 언급된 사실도 있다.

○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제까지 바그람 기지 내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적 구금행위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힌 바 없고, 우리 군이 이 기지 내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밝힌 적이 없다.

○ 다산 동의부대의 인도적 지원활동은 아프간 주민들을 상대로 한 활동이 아님.

○ 정부는 아프간에 파병된 다산 동의부대가 인도적 지원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홍보해왔으나 사실 다산 동의부대의 주임무는 아프간에 파병된 다국적군을 위한 시설개보수나 이들에 대한 진료이지 아프간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다.

○ 인도적 구호활동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2001년 아프간 파병 동의안에도 명시되어 있다. 군이 22만 명의 ‘주민’들에 대해 의료행위를 펼쳤다고 홍보하는 것은 과장된 거짓 보고이다. 동의부대 파병목적상 진료대상은 다국적군이다. 주민에 대한 진료가 있다면 매우 제한된 소수에 한정된다.

○ 바그람 기지는 지역주민들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 아니며, 바그람 기지에 주둔하는 다국적군은 아프간 재건지원을 위해 파병된 군대가 아니라 전투를 위해 주둔하는 군대다. 정부와 국회는 아프간 파병 부대의 실제 활동에 대한 진실을 공개해야 한다.(참여연대 평화군축센타 성명 2007년 2월 28일)

● 다산부대원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는 점령군대로서의 아프간 파병 한국군(강성주, 대학생)

“ 나는 200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윤장호 병장이 근무하던 다산부대의 통역병으로 파병생활을 했었다. 윤 병장이 테러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바로 그 바그람 기지 정문에서 윤 병장이 수행하던 현지인 에스코트 임무를 나 자신이 여러 번 수행하기도 했었으니, 그의 파병부대 선배인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차량으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진 미군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6개월간의 파병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하나 둘 씩 경험하게 되었다.
“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조악한 한국군 막사의 한켠에서 검은 기념비 하나를 발견했다. 이 비석은 한 한국군 장교의 순직을 무덤덤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대테러 작전 중 순국한 한국군을 기념한다’ 는 비문의 진실을 알아보던 나는 본국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사건을 알게 되었다. 2003년 아프간에 파병된 동의부대 소속의 장교 두 명이 말다툼을 하다가 상급 장교가 하급 장교를 권총으로 쏘아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지역이기 때문에 모든 다국적군은 항상 실탄이 장전된 총기를 휴대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파병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한국군 장교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평화재건이 아닌 동족상잔을 자행하고 만 것이다.
“한국의 파병반대 운동에 불을 붙일까 우려했던 탓인지, 한국군은 치밀하게 관련 보도를 통제했고, 덕분에 이 참극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한국군은 총기 내 실탄장전을 금지하는 내부규정을 만들어야 했다. 미군 주도의 아프간 대테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군은 윤장호 병장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간의 파병생활 동안 간헐적인 탈레반의 로켓공격보다도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바로 ‘적’이 아닌 ‘우리’였다. 한국군 간부의 통역을 전담해야 했던 나는 한국군의 불의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산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지 근로자들에게 ‘수도 카불에서 진품 보석을 사오지 않으면 이 총으로 쏴 버리겠다’는 한 간부의 협박을 통역하면서 한국군 소총 앞에 겁에 질린 현지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심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아프간 국민들에게 평화와 재건을 선사하기 위해 파병을 간다는 대의명분과는 달리 나는 점령군으로서 피지배자들을 협박하고 모욕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되어야 했다. 학창시절 한반도에 주둔한 외세에 의해 능욕당한 조상들의 기록을 공부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나에게 점령군으로서의 한국군의 횡포는 통쾌함보다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내 편 네 편을 따질 것 없이 여성이라는 만고의 진리 또한 체험하게 되었다. 한국군과 협조관계에 있던 미군 여성에게 ‘예쁜 몸매’ 운운하면서 ‘수영장’에 같이 가자는 농을 일삼는 한국군 간부의 말을 통역하지 못하겠다고 거부하다가 병사 주제에 명령에 따르지 않으니 강제 귀국시키겠다는 협박과 신체적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서, 현지인을 협박하고 남의 나라 여군을 희롱하라는 명령을 받는 내 신세가 처량하고 또 동시에 그들에게 죄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파병장병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의 나락에서 여성과 약자의 가해자로 전락한 우리 젊은이들의 양심을 건사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하루빨리 조국에 돌아와야 한다.”

● 천영록 인턴기자가 경험했던 아프간 파병 다산부대

- 고 윤장호 병장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서 2004년 8월부터 통역병 분대장으로 근무했던 본지 천영록 인턴기자의 생생한 체험기.

“나는 2004년 8월 군복무 중 고 윤장호 병장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 통역병 분대장으로 배치받아 6개월간 복무했다. 그 곳은 막연하기만 한 오지의 사막으로 군인 사이에서는 온갖 흉흉한 소문만 무성한 곳이었다.
“ 다산 4진 100여명과 함께 한 아프가니스탄의 체험기간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처음 그 땅을 밟는 순간 느낀 것은 ‘미군이라는 숙주’를 통해 모든 게 이뤄지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장병들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인수인계, 눈 앞에서 폭탄이 터지지만 실전을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어린 한국군은 그저 유엔평화유지군에게 보기 좋게 포장해 보낸 종합선물세트였다. 우리는 그저 미군상급부대의 명령과 보호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2004년 8월부터 6개월간 해발 1800m에 달하는 바그림 미 공군기지에서 이뤄진 다산부대의 가을파병. 극단적인 건조함과 일교차, 야간에도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굉음은 귀를 찢었고, 미군이 지원한 텐트기지에서 흉폭한 모래바람을 견디는 나날이었다.
“한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뢰밭 한가운데 위치한 소련기지의 잔해 속에서 한국군의 행동 반경은 고작 사방 16㎞에 불과했다.“한국군이 하는 일은 미군을 도와 이곳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공병으로서의 상징적 업무였다.
“아슬아슬한 포격도 수시로 발생했다. 우리 부대에서 고작 몇십미터 거리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때때로 미군 사상병의 소식도 들려왔다. 특히 기지 밖으로 출전
하는 미군은 하루에도 두세 번의 교전이 있었고, 때로는 중상을 입기 때문에 엄청난 전쟁 스트레스를 받고 견디고 있었다. ([헤럴드경제] 2007년 2월 28일)

2) 아프간 파병 한국군이 지방재건팀에서 수행하는 전투부대 역할

○ 지역재건팀 참가를 둘러싼 정부의 거짓말

- 최근 미국이 아프간 파병 연장 요청에 따라 김장수 국방장관은 "아프간 지방재건팀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2004년부터 한국 군대는 미국과 함께 지방재건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 아프간에서 한국군대는 지역재건팀을 통해 미군을 돕고 있음.

- 미 국방신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언급돼 있다.
“연합군이 주도하던 Konduz 지방재건팀이 나토에게 그 권한을 이양했다. … 연합군은 6개의 지방재건팀을 운영하고 있고, 몇 달 안에 5개가 더 생길 예정이다. 미국과 한국이 연합해서 파완(Parwan) 지방재건팀을 운영하고 있고, 뉴질랜드는 바미안(Bamian) 지방재건팀, 영국은 마자르-에-샤리프(Mazar-e-Sharif) 지방재건팀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칸다하르(Kandahar), 가르데즈(Gardez), 하트(Heart)에서 지방재건팀을 운영하고 있다.”(미 국방신문 2004년 1월 6일)

- 파완 지방재건팀(Parwan PRT)은 5명의 민사업무로 파견된 미국 군인들(U.S. Army civil affairs Soldiers)과 7명의 민사업무로 파견된 한국 군인들(Republic of Korea civil affairs soldiers), 경비 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파완 지방재건팀은 5개 지방의 재건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www.globalsecurity.org 2004년 6월 7일)

아프간에 파병된 한 미군이 찍은 사진. 파완 지방재건팀에 한국과 미국이 함께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간에서도 지역재건팀은 전투 임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활동을 수행한다. 아프가니스탄 점령군은 “지역재건팀” 아래 “재건기동부대”라는 전투 부대를 두고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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