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일 목요일

최근 중동정세에 관한 평화단체 간담회 자료 공유합니다.

 
최근 중동정세에 관한

평화단체 간담회
 
일시 : 201852()
장소 : 민주노총 교육원(15)
주최 : 반전평화연대()
(검색창이나 페이스북에서 반전평화연대 입력하시면 여러 정보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순서
 
- 사회 : 반전평화연대() 간사 김어진
- 발표 1 : 최재훈(경계를 넘어)
- 발표 2 : 김종환(<노동자 연대> 중동 전문 기자)
- 질의응답과 자유토론
- 발표자 정리
 
 
 
 
 
 
 
 
 
 
 
 
 
 
 
 
 
발표 1 자료
 
 
 
아래의 두 글은 20174월에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연속으로 기고했던 칼럼임을 밝혀 둡니다.
 
 
<칼럼> 시리아를 향해 날아간 토마호크 미사일은 짜고 친 힘자랑일 뿐
 
최재훈 (경계를넘어)
 
"시리아를 공격하지 말라.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주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시리아를 공격하기에 앞서 대통령은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큰 실수다.”
 
이는 201382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구타 지역에서 사린가스로 추정되는 잇따른 화학무기 공격으로 최소 14백여 명의 주민들이 사망한 직후, 어느 미국인 트위터 이용자의 계정에 올라온 글이다. 당시는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이동시키거나 사용하게 되면, 그것이 곧 미국의 전면적인 시리아 군사 공격의 레드 라인이 될 것이라던 오바마 대통령의 1년 전 경고를 실행에 옮길 것인지를 놓고 미국 정부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때였다. 따라서 해당 트윗의 작성자는 “(미국은) 시리아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며 군사공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직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고 미국의 45대 대통령 자리에 취임했다. 그렇다.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이야기다.
 
그런 그가 지난 46일 동지중해에 정박 중이던 2대의 미 해군 구축함에 명령을 내려 개당 100만 달러짜리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59발을 시리아 정부군의 샤이라트 공군 기지에다 쏟아 부었다. 알다시피, 그 이틀 전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주 칸샤이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무기가 살포돼 최소 86명이 숨지고 3백 여 명이 부상당한 데 따른 보복과 대응 차원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주장과는 달리 트럼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는 물론이거니와 미 의회의 승인 같은 절차 따위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공격 직후 그가 발표한 공개 성명에서는 오로지 이 야만적인 (화학무기) 공격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어여쁜 아기들에 대한 가슴 아픈 연민과, “치명적인 화학 무기의 확산과 사용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사활적인 국가 안보 이익이라는 확신, 그리고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살육과 유혈사태를 종식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에 동참하라는 모든 문명국가들에 대한 요구만이 넘쳐날 뿐이었다. “미국과 전 세계에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말이다.
 
허나 정말로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면, 트럼프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며 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이 한순간 갑자기 보편적 인도주의에 이끌린 코스모폴리탄(범세계주의자)으로 변신했다고 믿을 근거도 전혀 없다. 몇 가지 사실만 짚어 봐도 그렇다. 트럼프는 취임 일주일 뒤, 남부 예멘에서 군사작전 도중 숨진 미 해군 특수부대원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하는 트윗을 전송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작전 과정에서 학교와 사원에 피신해 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된 30여 명의 예멘 주민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바로 지난 3월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인해 200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사망했을 때도, 이번에 화학무기 공격이 벌어졌던 칸 샤이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리아의 알 지나라는 마을의 사원에서 역시나 미군의 공습으로 60여 명의 주민들이 몰살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들의 숫자만 해도 대략 4천여 명, 거기에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예멘을 공습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그가 맨 먼저 추진한 정책 중의 하나는 시리아를 비롯해 남수단과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이라크 등 대부분이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7(나중에 이라크는 제외) 이슬람 국가 출신 난민과 주민들의 미국 입국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미 자국 내에 체류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지원하는 예산을 대폭 삭감했으며, 미국이 난민들에게 결코 안전을 제공해주는 나라가 아니란 걸 그들의 면전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거라고 광기어린 지지자들 앞에서 떠벌리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럴진대, 어떻게 화학무기로 인해 80여 명의 희생자들이 발생했을 때에만 유독 트럼프와 그 정부 당국자들의 인도주의와 인간적 연민이 갑자기 용암처럼 분출돼 나왔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이번 시리아 공군기지 공습은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과 오바마케어를 대체할 미국보건법안의 하원 표결 좌절, 대선 과정에서 캠프 핵심 인사들이 러시아 정부와 접촉해 도움을 받으려했다는 정황 등으로 인해 벌써부터 레임덕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국내용 무력 과시(show of force)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러시아가 지원하는 나라의 정부군을 상대로도 미사일을 쏘는 거 봤지? 이래도 내가 러시아와 한통속으로 보여?’하는 메시지를 자국민들에게 던진 거란 것이다. 이는 공습 당일 미 국방부는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양측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기존의 채널을 통해 러시아 군 당국자들에게 공습 사실을 미리 알렸고, 러시아 당국이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에게도 통지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정부 관리들도 알고 있다는 미국 뉴욕 타임스 지의 보도로도 잘 드러난다. 실제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이 (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시리아 공군력의 20%를 제거했다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시리아 공군기들은 주말부터 버젓이 반군 지역들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다. 사실상 짜고 친 고스톱이란 이야기다. 이렇듯 미국과 러시아 군 당국자들은 이전부터도 시리아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양국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터키에서 거의 매일 접촉을 갖고 그날의 공습 일정과 대상 지역, 공군기의 항로를 서로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바와는 달리, 미국의 시리아 군사 개입 강화가 러시아와의 전면 대결로 비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비해 정말로 우려되는 지점은 따로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대척관계에 있던 미 공화당 주류와 민주당 지도부, 심지어 그로부터 가짜 뉴스라고 조롱받던 언론들까지도 하나같이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군사 모험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공화당 내의 대표적인 트럼프 비판자였던 2008년 대선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오늘밤의 믿음직한 첫 걸음을 토대로 우리는 마침내 역사의 교훈을 얻어 전술적 성공이 반드시 전략적 전진으로 이어지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고,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역시도 트럼프가 옳은 일을 했다고 칭찬했으며, 민주당 내에서 진보 세력의 희망으로 불리며 차기 대선후보로까지 지목되는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조차 “(공습은) 균형 있는 대응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CNN의 시사 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제야 비로소)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찬사를 보냈으며,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도덕적 차원의 리더십이 트럼프의 집무실을 관통했다고 하지를 않나, MSNBC의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아예 한 술 더 떠서 방송으로 중계되는 미사일을 가리켜 세 번이나 아름답군요를 연발하기도 했다.
 
이는 곧 일반 국민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쳐 더 이상 가스에 질식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하는 것(do something)'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do nothing)'보다는 낫다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 광범위한 힘을 얻는 결과로 이어질 수가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더 많은 군홧발을 전장에 들여놓게 하는(more boots on the ground)' 정책이 6년째에 접어든 전쟁으로 인한 시리아 국민들의 고통의 시간을 그만큼 줄여줄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리아 아사드 정권 교체 전략을 이제 논의 테이블에서 내려놓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이번 화학무기 공격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 뚜렷하고 일관된 전략 자체가 부재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전략으로는 결코 시리아 내전의 종식을 그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뭘까? 아니, 과연 끝나기는 할까? 조금이나마 그 답답함을 풀어보기 위해, 다음 주에 이어질 글에서는 현재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얽히고설킨 양상과 전쟁 종식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꺼내볼까 한다.
 
 
<칼럼>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 시리아 비극, 해법은?
- 시리아에서의 모든 적대 행위, 결국 외세 개입 중단에서 시작해야
 
최재훈 (경계를넘어)
 
지난 번 기고에서 나는,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이 현재 바닥을 기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낮은 국내 지지율과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러시아와의 공모 스캔들을 상쇄하려는 일회성 힘자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편 바가 있다. 그 며칠 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 대사가 했다는 말처럼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등장했다는 걸 과시하는 차원일 뿐, 신경가스 공격으로 죽어간 아름다운 아기들의 고통에 대한 진심어린 반응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보내놓고는 마음 한 구석이 영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음을 뒤늦게 고백해야겠다. 오늘날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시리아 국민들이나 멀리 타국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시리아 난민들이 만약에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들의 눈에는 행여 지구 저편에 한가로이 앉아 트럼프가 어떻고 미국의 의도가 어떻고 하면서 관전평이나 늘어놓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았을까? 그렇지 않아도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아왔다는 배신감에 힘들어하는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기는커녕 소금을 뿌린 건 또 아닐까? “누구도 자기 나라에 공습이 가해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6년에 걸친 학살을 지켜본 뒤, 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살해하는 데 이용했던 비행장 하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오늘 아주 행복합니다라던 어느 시리아 출신 작가의 말을 접하고 난 뒤에는 특히나 더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한 가지 결코 흔들리지 않은 생각은, 미국이 아무리 미사일을 쏟아 붓고 기존에 파병된 5백 명의 미군 병력에 더해 450여 명의 해병대와 특수부대원들을 추가로 시리아에 들여보낸다 할지라도 그런 군사적인 방식으로는 오늘날 시리아의 비극을 절대 끝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나 반군, 러시아, 이란, 터키, 이라크,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시리아 내전, 아니 이미 국제전으로 비화된 지 오래인 시리아 전쟁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오늘날의 형국이 그걸 뒷받침해준다. 잔뜩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가위로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리면 허리가 싹둑 잘려버린 실 전체를 못 쓰게 되는 것처럼, 꼬인 갈등과 전쟁의 실타래는 차분히 둘러앉아 말 그대로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가듯 해야 하는 법인 것이다.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든 시리아 전쟁은, 간단히 표현하자면 단순한 진실에서 출발해 복잡한 현실로 질적 변화를 일으킨 사례라 하겠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의미는 1963년과 1966, 1970, 이렇게 세 차례의 쿠데타를 거쳐 장기집권을 시작한 알 아사드 가문이 오랜 기간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 기본적 인권을 억압한 독재체제를 구축해왔으며, 20113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봉기는 그에 맞선 대중적 민중항쟁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는 걸 뜻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초기의 시리아 항쟁은 무장투쟁 보다는 평화적인 대규모 행진과 시위, 농성, 문화적인 방식의 저항이 오히려 주를 이뤘고, 그래서 더더욱 전 국민적인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겠다.
 
반면 그에 맞선 알 아사드 정권의 대응은 크게 네 가지 차원의 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평화적인 시위대를 잔인하게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무장투쟁을 유도해내는 항쟁의 군사화, 두 번째는 2011년과 2012년 사이 수백 명에 달하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감옥에서 풀어줌으로써 그들이 반군과 뒤섞이게 만드는 항쟁의 이슬람주의화, 세 번째는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수니파 주민들과 15%의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이 서로서로 맞서게 하는 종파주의화, 마지막으로는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를 끌어들임으로써 지역에서 그들과 경쟁적 위치에 있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동적으로 끼어들게끔 만들고, 동일한 맥락에서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군사개입을 이끌어내는 국제분쟁화가 그것이었다. 이런 영리하고 교활하면서도 국가적으로는 파멸적인 전략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듯이 반정부 시민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의 점진적인 세력 약화,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의 상대적인 영향력 확장, 한 때 종파를 뛰어넘어 반독재 항쟁의 편에 섰던 알라위파 일부 주민들의 절대적인 친정부 입장으로의 선회, 정부군의 전쟁 주도권 탈환, 가장 중요하게는 전쟁의 장기화와 주민들의 고통 극대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리아 민중들이 평화적인 시위에서 무장투쟁으로 저항의 방식을 바꾼 것이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정부군과 샤비하라 일컬어지는 폭력집단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당하고 끌려가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무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훨씬 더 강했고, 정부군에서 탈영한 군인들이 자유시리아군(FSA)’에 대거 합류한 이유 또한 정부군의 유혈 진압 명령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광범위한 대중적 참여에 기초한 비폭력적 저항에서 전투가 가능한 청년층 중심의 무장투쟁으로 항쟁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순간, 항쟁의 동력은 필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정부군에 비해 무기와 훈련이 턱없이 부족한 시민군이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적으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불 보듯 예견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그 동맹국인 터키와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들은 시민군에게 다량의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그렇게 제공된 무기와 자금은 고스란히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에게 대거 넘어가 오늘날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즉 이슬람국가(IS)를 탄생시킨 자양분이 됐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아사드 정권의 축출에 있어서는 시민군과 뜻을 같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칼리프를 정점으로 한 이슬람 신정체제 건설을 더 큰 목적으로 하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은, 한 편으로는 정부군에 맞서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군과 지역의 활동가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총부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자유시리아군과 이슬람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201334일 주()의 수도로서는 처음으로 정부군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 뒤 한때 시리아 혁명의 모델로까지 칭송받을 정도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다가, 어느 순간 등을 돌린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시민군과 활동가들이 철저히 탄압당하고 쫓겨났던 락까 시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한 때 시리아의 거리 곳곳에 나부끼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깃발이 점차 칼리프의 검은 깃발로 대체되는 과정은 부패하고 폭압적인 정권과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 간의 대결이라는 시리아 항쟁의 단순했던 본질이 종교와 종파, 민족, 지역 패권을 배경과 목적으로 한 다수의 행위자들 간의 뒤엉킨 복마전으로 변질되는 과정과 시공간적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오늘 2017년 봄을 기준으로 그 구체적인 행위자들과 각각의 대립 구도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리아 아랍군이라 불리는 정부군은 러시아와 이란,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 이라크에서 건너온 시아파 민병대로부터 군사적인 지원을 받는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은 시리아 민주군이라는 이른바 온건 성향의 반군을 지원하는데, 그 주력은 약 25천 명에 달하는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 인민방위대(YPG)’여성방위대(YPJ)'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사드 정권의 축출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이 원하는 건 로자바라 불리는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지역의 완전한 자치이고, 그를 위해 20149월부터 자신들의 존립 자체를 위협해온 이슬람국가를 몰아내는 게 군사적 목표다.
 
한편, 시리아 쿠르드족과 국경을 마주한 터키는 자신들이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쿠르드 노동자당(PKK)'과 민족적 정체성을 같이 하는 그들을 적으로 여긴다. 따라서 터키 정부는 미국과 프랑스가 시리아 민주군을 지원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고, 그로 인해 작년 여름부터는 국경의 안정화를 구실로 유프라테스의 방패라는 작전명 하에 아예 독자적인 군사 개입을 감행한 바 있으며,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이면서도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에서는 러시아 정부와 더 끈끈한 공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터키는 시리아 내의 마지막 남은 반군 거점이라 일컬어지는 북서부 이들립 주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아흐라르 알 샴(시리아 자유인 운동)‘이라는 이슬람주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헌데 이들립 주에는 아흐라르 알 샴과 경쟁관계에 있는 알 카에다 계열의 자밧 파타 알 샴(시리아 정복 전선)‘이라는 또 다른 이슬람주의 반군이 있다. 이들은 올 초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평화협상을 거부하면서 아흐라르 알 샴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왔고, 최근에는 비슷한 성향의 반군 조직들을 규합해 타흐리르 알 샴(시리아 해방)‘이란 연합 조직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누르 알 딘 알 진키라는 이슬람주의 반군들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은 2015년까지도 온건파 반군으로 분류돼 미국의 자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왔다. 이밖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던 '자이쉬 알 이슬람(이슬람군대)'라는 이슬람주의 반군도 있다.
 
여기에다 모두가 잘 아는 이슬람국가(IS)까지 뒤엉켜 다양하고 복잡한 세력들이 오늘날 시리아에서 서로 물고 물리며 싸운다. 정부군과 반군이 싸우고, 쿠르드족과 이슬람국가가 싸우며, 다시 이슬람국가와 반군이 싸우고, 반군과 반군끼리 갈라져 싸운다. 그렇다. 앞서 시리아의 비극을 군사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끝낼 수 없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오늘의 시리아는 선과 악, 적과 아를 구분하기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시리아 전쟁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해법은 군사적 방식의 정반대 편에 있다. 우선 그 출발점은 모든 적대 행위의 중단이다. 그를 위해서는 미국과 러시아, 터키, 이란 같은 외세 열강들이 각자가 미는 세력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개입을 일절 중단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더 많은 개입은 더 많은 죽음과 고통을 낳을 뿐이다. 그 다음으로 시리아의 미래는 시리아 국민들이 결정하게끔 놔두어야 한다. 물론 국민들을 상대로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아사드 정부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 지에서부터 이슬람국가의 퇴치에 이르기까지 넘어야할 산들은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산을 곧장 넘어갈지 에둘러 갈 지를 결정하는 건 시리아 국민들의 몫이어야 한다. 얼마 전 이들립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시위를 통해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인 자이쉬 알 이슬람의 철수를 이뤄낸 사례에서 보듯이, 지금도 시리아에는 항쟁 초기부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질서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활동가들과 지역사회의 역량이 상당부분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6백만 명에 달하는 해외의 난민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리아 전쟁의 해결책과 그 이후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경험과 활동력을 축적해온 단체와 개인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외부에서 쥐어준 무기를 들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 계속되는 한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일체의 군사적 적대 행위가 중단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총 소리를 대신하는 순간, 바로 그 때가 새로운 시리아의 첫 날이 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무리 더디고 힘들어도 꼬인 실타래는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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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2 자료
 
[발제문] 흔들리는 미국의 중동 패권과 평화운동의 관점
 
<노동자 연대> 기자 김종환
 
 
한국시간으로 어제,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증거라며 문서 공개했다. 그는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며, 이란이 2015년 핵합의를 명백하게 위반하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네타냐후가 공개한 그 문서는 이미 공개된 문서이고 핵합의 전에 IAEA 등이 진즉 알고 있는 오래 전 문서였다.
왜 이스라엘은 그런 쇼를 했을까? 지금 미국 트럼프는 2015년 이란과 한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려고 하고 있는데, 합의 파기 책임을 이란에게 떠넘기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512일에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활시켜 핵합의가 깨지더라도 이는 미국이 아니라 이란 탓이라는 논리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물어야 한다. 이란 핵합의가 뭐길래?
일단, 팩트부터 살펴 보자. 이란 핵합의는 2015년에 오바마 정부가 맺은 것으로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무기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우라늄 농축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를 풀어준다는 것이었다. 주요 핵강국, 즉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이란과 나란히 서명했다.
여느 정치 조약이 그렇듯 중요한 것은 합의 자체보다도 그 맥락이다. 이란 핵합의 파기는 중동이 한창 군비 경쟁, 심지어 핵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나오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중동은 동남아시아와 함께 전세계에서 무기 수입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이 군대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대략 이집트, 터키, 이스라엘, 이란이 서로 승부를 겨룰 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 중 누구도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국가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나름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고 힘겨루기를 할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싸우는 군대를 갖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얼핏 보면 이들 국가 중 이란 빼고는 모두 미국의 동맹이니까 군비 경쟁이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예컨대, 터키는 이들 중 유일한 나토 군사동맹 가입국이고, 이스라엘은 사실상 국가 전체가 미국의 지원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 지원을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받는 국가다. 미국 자신이 페르시아만 한 가운데에 미해군 5함대(바레인)1만 명의 병력(카타르)이 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서로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예컨대,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후임을 자처하며 과거 제국의 일부였던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야심이 있다. 이집트는 식민지 독립을 이끈 아랍 민족주의 운동의 선두주자이자 아랍 문명의 심장을 자처하며 비슷한 야심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고 막대한 자금력으로 아라비아반도를 자기 앞마당처럼 여긴다.
미국의 중동 지배력이 확고할 때는 이들 간의 반목은 국제 뉴스에서 부차적 구실만 했다.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큰 형님 앞에서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 형국이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놓고 가끔 충돌도 하지만 그것조차 일관되지도 진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이 지정학적 재앙으로 끝난 지금은 이런 갈등이 개별국가의 역량보다도 더 큰 불안정을 낳고 있다.
지정학적 재앙이라는 말은 브레진스키라는 미국의 전략가가 한 말이다. 그는 후안무치하게 미국의 군사 패권을 추구하는 아주 재수없는 인물이다. 그가 재앙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라크인들이 많이 죽어서가 아니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약 200만 명이 사회적 혼란으로 추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를 안타깝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21세기의 패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다른 열강(유럽,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게 확인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중동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되레 유럽의 손이 크게 아쉽고, 러시아가 야금야금 치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버거워하는 지경이 됐다. 20035월 조지 부시가 임수 완수”(mission accomplished)한 것과 트럼프가 지난달 임무 완수선언한 것은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맥락은 정 반대다. 당시 부시는 프랑스 독일의 반대를 묵살하며 늙은 유럽운운하며 전쟁을 벌였다면, 이번에 트럼프는 시리아 폭격 전 영국, 프랑스, 독일의 협조를 구하려고 애썼다.(영국·프랑스는 함께 했고, 독일은 거절했다.)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전쟁이 왜 정반대 결과로 끝났는지는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못한다. 많은 자료가 있고, 제가 쓴 것 중에는 미국은 이라크 폭격 중단하라 제국주의가 손 떼는 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다’(2014.8.15, <노동자 연대>)에서 나름 다뤘다.
이처럼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1년 아랍 혁명이 터져 나왔고 특히 이집트가 18일 만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중동 각국 지배자들은 한층 더 긴장하게 됐다. 미국의 지지가 정권 유지의 보증수표였는데, 그게 불안해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망조라는 게 확실시 되던 2000년대 후반부터 중동 각국은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 이란이 오랫동안 멈췄던 핵개발에 다시 나선 것도 이 시기이고, 이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터키가 핵발전소를 짓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연내 사업자를 선정해 첫 핵발전소 공사에 착수한다. (문재인은 신난다며 바로 여기에 뛰어들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인도주의적 재앙이다. 유엔은 50만 명까지 사망자를 집계하다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미국이나 중동 지배자들에게는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이 대대적 군대 투입을 꺼리면서 다음 두 가지를 확인하고 있다는 게 그들에게는 중요하다. 첫째는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세력(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들끼리도 교통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입장에서 이 두 가지는 수치스러운 일이고 무엇보다 중동에서 자신의 패권이 흔드는 일이다. 그러나 중동에 더는 발목이 묶이고 싶지 않다는 게, 적어도 오바마 이후 미국 지배자들의 생각이고 트럼프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트럼프 생각에 시리아는 미국이 개입하기 껄끄러운 전장이고, 시리아 확전은 자신의 인기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다. 그는 이란이 아니라 중국을 손 본 미국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리아를 무대로 이란-이스라엘 사이의 긴장을 높아지는 지금, 트럼프 자신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고 있다. 514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성대하게 치르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스라엘을 한껏 고무하는 동시에 고립시켜 이스라엘의 군사력 사용을 부추길 것이다. 예고된 대로, 512일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정말로 파기한다면 이란도 더 공세로 나올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이란 핵합의, 미국의 예루살렘 선언의 맥락을 살펴 봤다. 한국 반전평화운동이 가져야 할 관점에 대해 말하며 마무리하겠다.
1. 무엇보다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 위기는 미국의 패권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자신의 패권 강화를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그것이 미국 통제 밖에 있는 요인과 맞물리면서 생기는 일이다.
미국의 직접 군 주둔 등을 지금 꺼린다고 해서, 미국을 배제한 채 이란, 이스라엘 등의 갈등을 바라 보거나 두 나라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은 주범을 놓치는 게 된다. 미국의 중재나 개입을 촉구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비슷한 이유로 이란 핵개발 등에 대해 이란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나쁜 놈이라는 식의 대칭적 양비론도 틀렸다. 이스라엘, 사우디 등은 미국과 긴밀하게 조율하고나 이후 자신들의 행동이 미국의 지원, 승인을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 이는 물론 그 나라들이 미국을 쥐고 흔들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그런 국가들을 앞세워 자신의 배타적 지위를 유지하려 들기 때문이다. 미국이 10년 가까이 점령 통치한 이라크에서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은 미국이 결코 해결사가 되지 못한다는 증거다. 지금의 중동은 미국 제국주의가 방어적일 때조차 중동을 엉망으로 만들고 수많은 인명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정말로 벌어진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을 비판하며 시리아에서 손 떼라고 주장해야 한다. 미국 대사관,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항의 집회 등을 벌여야 할 수 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러시아도 제국주의 국가다. 국제 좌파 일각에서는 시리아 정부가 사회주의라거나 러시아 개입이 반제국주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서 보듯, 러시아는 시리아를 게임의 칩으로 삼아 영향력을 늘리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미국만이 중동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위선에 도전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의 개입은 진보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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