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6일 목요일

반전평화 모니터보고서3호 _ 그들은 아직 전쟁을 그만둘 의지가 없다

 

그들은 아직 전쟁을 그만둘 의지가 없다

::글_ 까밀로(경계를넘어)

 

지난 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전역에 중계된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전투 임무가 종료되었음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소식을 접한 미국 국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불과 2주 전, 2차 세계대전 종전 6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십 명의 젊은 남녀들이 뉴욕 타임 스퀘어에서 수병과 간호사 복장을 한 채 키스 세리모니를 했던 것과 같은 기념 이벤트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10년 가까이 끌어온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피로감과 당최 빠져나올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그리고 그에 따른 실업률 증가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전투임무를 종료했다는 거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별다른 감흥이 없기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수천 명의 군중들을 모아놓고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신 자신의 집무실에서 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마치 점잖은 교수님처럼 "이제는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 운운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이런 오바마의 태도는 어찌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이라크 전쟁에 대해 “잘못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국민들을 속인 잘못된 전쟁”이라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즉, 이라크 전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바마의 전쟁이 아니었으며, 전임자가 누고 간 똥을 자기가 대신 치운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달랐다. 역시 대선 후보이던 시절, 그는 ‘이라크 전쟁은 나쁜 전쟁, 아프간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라며 두 개의 전쟁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반전 여론이 월등히 높은 자기네 지지자들의 기대를 교묘히 피해갔다.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들이 숨어있는 곳은 이라크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러니 이라크의 병력을 아프간으로 돌려서 신속히 테러리스트들을 격퇴시키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겠다, 예스 위 캔’ 하고 말이다.


이번 연설에서도 그의 그런 ‘담대한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알 카에다는 계속해서 우리를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고, 그 지도부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지대에 몸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분쇄, 해체, 격퇴시키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들의 기지로 이용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이라크에서의 철수 덕분에 우리는 이제 공세를 가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 덕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미 오바마의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이는 몇 가지 단순한 수치를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의 수는 3만 3천 여 명에 불과했으나,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그 세 배인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오바마가 공식 취임한 2009년 1월 20일부터 올 해 8월 중순까지 사망한 미군의 숫자는 모두 577명으로, 부시가 집권하던 기간에 사망한 575명을 넘어섰다(icasualties.org 통계). 물론 미군 사망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동안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의 수는 최소 1,200명, 부상자는 1,997명을 기록해 2001년 탈레반 정권이 쫓겨난 이래로 가장 많은 민간인 인명피해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모두가 이제는 더 이상 부시 전 대통령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오바마 스스로가 안고가야 할 업보인 것이다.


어찌됐든 간에,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머릿속에 그리는 아프가니스탄 해법은 아주 단순하다. 단기간에 많은 병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서 탈레반을 몰아내고 치안을 안정시켜 아프간 주민들의 ‘마음(hearts and mind)'을 사로잡은 다음, 아프간 정부에게 치안 유지의 책임을 넘기고 ‘모양새 좋게 빠져나오는(graceful exit)' 게 그의 구상이다. 물론 요 근래 아프간 주둔 미군 및 나토군 사령관에 취임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는 퇴각이란 표현에 여전히 발끈하며 반드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승리란 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조차 애매모호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오바마의 아프간 해법은 전혀 귀에 설지 않다. 바로 부시의 이라크 해법과 붕어빵처럼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라크를 아프간으로, 부시를 오바마로 바꿔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 때문에, 공화당과 우파들은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부시의 이라크 증파 결정에 끝까지 반대한 사실을 들먹이며 오바마를 조롱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에이, 잘난 척 하더니 너도 별 수 없네”하고 말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오바마의 아프가니스탄 해법은 온전히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부시 시절부터 양대 전쟁의 판을 짜고 지휘해온 전 현직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및 나토군 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탈(Stanley McChrystal)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를 비롯한 미 국방부의 장군들이 짜놓은 구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에 대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지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패프(William Pfaff)도 ‘모양새 좋은 퇴각은 불가능하다(There can be no Graceful Exit)'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할 무렵,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총괄하는 사령관이던 퍼트레이어스는 이미 (아프간 전쟁) 계획을 다 짜놓은 상태였고, 군사적으로 초짜인 오바마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 예상했다... 이 계획은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새롭게 증파하고 거기에다 그 수만큼의 민간 군사요원들을 늘리는 것이었다... 오바마가 이 계획이 2011년 7월 미군이 철군을 시작할 수 있게끔 일 년 안에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을 지 묻자, 그들의 대답은 ‘문제없습니다, 대통령님’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참모들의 조언을 듣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최종 결정과 책임은 대통령의 몫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굳이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오바마가 아프간 전쟁의 해법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퍼트레이어스와 미 국방부가 보이는 행보가 심상치 않아서다. 그는 지난 8월 15일, 미 NBC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프간 미군의 대규모 조기 철군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뉴욕 타임즈는 “퍼트레이어스는 심지어 내년 여름 미군이 절대 철수해서는 안 된다고 (대통령에게) 제안할 가능성까지도 열어놓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비단 퍼트레이어스 뿐만이 아니다. 퍼트레이어스처럼 총대를 메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지 않을 뿐, 국방장관인 로버트 게이츠나 합참의장인 마이크 물렌 역시도 미국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철수가 아닌)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2011년 7월 철군 시작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때마침 8월 22일자 워싱턴 포스트 지에는 그런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그 일부분만 인용해 보면,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북부에 각각 1억 달러 씩을 들여 공군 기지 세 곳을 확장하겠다는 (미 국방부의) 이번 발표는 미래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증강된 군사 작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군사)시설을 계속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세 가지 공사는 모두 2011년 하반기가 지나서야 완공될 것이며, 아프가니스탄 군이 아니라 미군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이 기사가 틀린 게 아니라면, 당연히 상식적인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아니, 내년 7월부터 철군을 시작한다면서 수천억 원의 돈을 들여 기지를 확장한다고?’ 하는 의문 말이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퍼트레이어스 사령관과 미 국방부의 미심쩍은 행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나토 연합군인 국제안보지원군(ISAF)은 8월 25일자로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그 대강의 내용은, 헬만드주 마르자 지역의 탈레반 사령관 물라 니아맛(Mullah Niamat)이 “탈레반은 마르자(Marjah) 지역에서 패배하고 있으며 승리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휘하의 반군들에게 공개적으로 인정했”으며, 이는 “전투에서의 패배와 아프간 주민들의 반감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에 기초한 판단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해당 보도 자료에서는 “나라 전체적으로 반군들의 사기가 아주 낮아지고 있다”는 ISAF의 대변인인 조제프 블로츠(Josef Blotz) 독일군 준장의 말도 인용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마르자 지역은 올 2월 중순부터 ISAF와 아프간 연합군이 ‘무시타라크(모두 함께)’라는 작전명 하에 탈레반을 상대로 전면대공세를 벌여온 곳이다. 따라서 ISAF의 보도 자료는 자신들의 작전이 상당한 성공을 거뒀음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인 셈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린 논리는 이렇다. “이제 막 투자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벌써 내년 여름부터 철군이라니요. 아니 되옵니다, 각하.”


그러나 ISAF 측의 이와 같은 주장은 즉각 반론에 부딪치게 된다. 영국 런던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안보개발위원회(ICOS)>는 마르자가 위치한 헬만드와 칸다하르 주에서 지난 7월에 522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벌였던 심층면접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금도 마르자는 여전히 탈레반의 통제권 하에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또한 마르자 주민들은 탈레반의 전술에도 “분개하고” 있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한 피면접자 전원이 미군과 나토군에게 더욱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고 한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 지의 조슈아 파트로우(Joshua Partlow)기자 역시도 탈레반 전사들이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미했던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오지 마을에서 국지전을 벌이는 사례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나라 전체적으로 반군들의 사기가 낮아지고 있다”는 ISAF측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펼쳤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아름답게 물러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애초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인력과 물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아프간 무장 세력을 최대한 분쇄한 후 빠져나오겠다는 오바마의 구상은 틀렸다. 그럴수록 아프간 민간인들의 피해만 가중시킬 뿐, 미국이 더 이상 손에 쥘 수 있는 건 없다. 그런데도 미 군부의 전쟁광들은 여론을 호도하며 대통령의 철군계획마저 뒤엎고 전쟁을 지속시키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행여나 ‘이라크 전쟁은 이제 끝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내년 7월부터 철군이 시작되면 슬슬 정리 수순에 돌입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아직 때 이른 착각이다. 바로 이것이 점령을 막기 위한 우리의 싸움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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