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일 목요일

모니터보고서2호_무지와 왜곡, 편견의 여진은 지진만큼이나 강하다

::읽어볼 거리

 

무지와 왜곡, 편견의 여진은 지진만큼이나 강하다

 

*반전평화연대() 회원단체 <경계를 넘어> 2010년 1월 27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글 입니다.

 

"파병 대열에 아이티 국민들은 과연 감격해하고 있을까?" 

흔히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 일컬어지는 아이티에서 대지진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여가 지났다. 아이티 민중들이 겪었던, 아니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세계인들 대다수가 발을 동동 구르며 가슴 아파했던 보름이었다. 그 중 일부는 직접 현장으로 날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 구조와 구호, 의료 활동에 힘을 보태기도 했고, 사정이 허락지 못한 사람들은 성금과 물품, 또는 마음으로나마 아이티 민중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진 직후부터 쏟아져 나온 외신 보도와 현지에 급파된 특파원들의 ‘생생한’ 현장 소식과 이미지가 주는 충격에 그만 넋을 놓은 나머지, 우리는 어느새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아이티 민중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집이 무너져 갈 곳도 없는 상태에서 먼지와 눈물이 뒤범벅되어 물과 음식을 찾아 헤매는 신세라 할지라도,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에 자신과 가족의 생명줄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즉 그들에게도 살고자 하는 본능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존심, 인격이란 게 있으며,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과 어려울 때 서로 도우려는 공동체 의식이란 게 존재한다. 단지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극단적 상황에 놓여있을 뿐, 아이티 민중들은 먹이를 던져주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이티 대지진 참사를 전하는 언론에 묘사된 아이티 민중들의 모습은 둘 중 하나다. 폐허가 된 집 앞에서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피해자’이거나, 혼란을 틈타 식료품과 생필품, 재물을 약탈하려 혈안이 된 ‘폭도’거나. 그렇게 딱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상황을 설명해주면 기사를 쓰는 기자도, 읽는 독자도 참 편리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조..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을 자임하는 한겨레, 경향이든 간에 아이티 민중들에게 그 두 가지 딱지 중 하나를 골라 붙이는 데는 별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런 식의 보도태도는 하나의 순환논리를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양 이끌어낸다. , 가난한 나라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나라가 완전히 초토화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능하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한없이 낮아서 구호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약탈과 폭력이 만연하다, 직접 취재해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더라, 유엔이 기존의 평화유지군으로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해보려는데 역부족이다, 결국 사람들을 살리려면 각국 정부가 군대를 보내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 정부는 무능하고 국민들 의식 수준은 한없이 낮으니까, 아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 등등. 그러나 과연 이는 진실일까? 그렇다면 아이티를 돕겠다고 수고롭게도 군대까지 급파한 미국, 캐나다, 브라질 정부나 유엔, 그리고 기꺼이 파병 대열에 합류를 선언한 한국 정부를 지지하고 박수쳐주면 되는 건가? 그럼 지금 아이티 국민들도 두 손 높이 뻗어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감격해하고 있을까? 나의 의문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할 의문이기도 하다.

 

아이티 역사 속에서 유엔평화군의 존재

 

그럼 하나씩 짚어보자. 아이티는 알려진 바와 같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을 이룬 나라다. 당시 약 3만여 명의 유럽계 백인들과 그 비슷한 수의 흑백혼혈인 물라토들에 의해 혹독하게 착취당하던 흑인노예들이 오늘날 아이티의 국부로 존경받는 뚜생 루베르뛰르와 그 뒤를 이은 장-자끄 데살린(Jean-Jacques Dessalines)의 지도 아래 대규모 항쟁을 일으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한 것이 1804년이었다. 그리고 이는 시몬 볼리바르를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혁명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 뒤 다른 국가들이 잇달아 독립을 이루는데 있어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굳이 이백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러한 그들의 과거가 오늘날까지도 아이티 민중들에게는 굳건한 자부심을 넘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독립 이후 경험한 쿠데타만도 무려 34차례였고, 그 영향으로 한 때 서반구 식민지들 가운데 가장 부유한 곳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상황이지만 아이티 민중들은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면서도 지금까지 그런 온갖 어려움들을 하나씩 극복해온 경험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쿠데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아이티인들이 가장 최근에 쿠데타를 경험한 것은 지난 2004 2월이었다. 91.8%라는 압도적인 지지 속에 당선됐던 장 베르뜨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대통령이 새벽에 무장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진 채 중앙아프리카로 쫓겨난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혹독한 경제제재로 아이티 국민들을 압박하는 한편 공공연하게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해왔던 미국 정부는 쿠데타 바로 다음 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 해병대 선발대 150명을 아이티에 배치해 사실상 아이티를 장악했으며, 뒤이어 프랑스, 캐나다, 브라질 군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유엔 평화유지군인 유엔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AH)이 구성돼 오늘날까지 아이티에 주둔해오고 있다.

 

이는 이번 대지진 참사에 뒤이은 상황과도 바로 직결되는 문제다. , 지금 아이티의 흥분한 ‘폭도’들을 진압해 치안과 질서를 유지해야만, 어려움에 처한 아이티 국민들을 위한 구호작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고, 그래서 더 많은 유엔 평화유지군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지난 몇 년 간의 아이티인들이 겪어오고 목격한 현실에 비춰볼 때 전혀 올바른 해법이 아닐뿐더러 그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강한 반발과 저항만 불러올 뿐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2004년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의 복귀를 통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거부해온 것이 다름 아닌 유엔이었고, 과거 군부정권 시절 인권침해로 악명 높았던 인물들을 아이티국립경찰로 등용하고 훈련시킨 것 역시도 유엔 평화유지군이었으며, 아리스티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아이티 경찰이 시민들을 수시로 체포, 고문, 성폭행, 살해함에도 불구하고 유엔 평화유지군은 팔짱만 껴온 모습을 아이티 국민들은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5년과 2006년 유엔평화유지군이 직접 시떼 솔레유 빈민가에서 수십 명을 학살한 것을 비롯해 인권침해의 가해자로 둔갑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번 지진 참사에서 보여준 아이티 정부의 무능함을 손가락질하지만, 알고 보면 그건 멀쩡한 대통령을 쫓아낸 뒤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고는 무능한 르네 프레발 정권을 허수아비로 앉혀놓은 유엔과 미국의 자업자득이다. 마찬가지로, 아이티 민중들이 시민 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이 부족하다고 쉽게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리스티드 대통령 당시 잘 조직되어 있던 <판미 라발라스(Fanmi Lavalas)>를 비롯한 풀뿌리 자치 조직들을 단지 아리스티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탄압하고 와해를 시도한 이들은 또 누구였단 말인가?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해온 아이티 민중들이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입장을 바꿔 유엔을 비롯한 외부의 군사적 개입을 반길 까닭이 있을까?

 

아이티의 이른바 '약탈' '폭력'의 본질

 

물론 이즈음에서 많은 이들은 위와 똑같은 논리를 반복하며 반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지금의 폭력과 약탈을 중단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어쨌든 아이티 정부와 경찰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현재 상황에서는 유엔을 비롯한 외부의 개입이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그래야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좀 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먼저, 아이티에서 강도 7.0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수십만 명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리고 살아남은 수백만 명은 집도, 물도, 식량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공황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 그러면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흥분한 아이티 민중들이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해서 닥치는 대로 약탈을 시작했을까? 이에 관해서는 우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그들이 등에 지고 있는 짐을 제외하고는 모든 걸 잃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나흘 동안 굶은 상태에서 뙤약볕 아래 시체와 뒤섞여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는 걸 고려하면, 이들은 아주 훌륭히 대처하고 있습니다... 아이티인들은 놀라운 국민들입니다. 그렇게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진 것 모두를 잃고도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요?(1 18일자, 영국 BBC 라디오)

 

그 다음으로는 오랫동안 아이티를 취재해온 미국 <데모크라시 나우> 라디오가 인터뷰한 현지 병원의 한 외국인 의사가 전한 말이다. (군인들이) 통제해서 환자들이 병원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그러나) 밤늦게 돌아다니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엔 치안이 불안하지는 않아요...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여기서 유일한 위기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없어요.(1 20일자, 데모크라시 나우 라디오) 이 밖에도 아이티란 나라와 그 사람들을 잘 알고, 참사 초기부터 상황을 지켜봐온 사람들이 전하는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구호품 식량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주먹과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 상점을 터는 ‘폭도’들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 기사로 전달한 국내외 기자들은 모두 헛것을 보거나 사실을 조작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왜 그들이 그렇게 분노하고 행동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짧은 시간 내에 취재를 하고(게다가 언어도 안 통한다!) 경쟁적으로 기사를 생산해내다보니, 부분적인 사실이 마치 전체적인 진실인 양 믿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나라는 가난한 흑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라니,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계급과 인종에 대한 편견까지 작동했을 테고 말이다.

 

아무튼 필자가 다시 종합해본 진실은 이렇다. 지진 뒤의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아이티인들은 “아이티 전역에서 스스로 주민위원회를 조직해 (현장을)수습하고 잔해에서 시신들을 꺼내며, 난민 캠프를 설치한 뒤 치안을 확보하는 모습”(<아이티 리베르떼(Haiti Liberté)>의 킴 아이브(Kim Ives))을 보여주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외부에서 전해지는 구호품과 의료진은 구경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일주일을 넘게 버텼다. 그러나 애타게 기다리던 도움의 손길은 소식이 없고 그 대신 미군이 공항을 장악해 그 곳에 작전본부를 차리고 생뚱맞게 대통령궁을 ‘장악’했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뿐만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는 한시가 급한 마당에 ‘구호품과 의약품을 가득 실은 세계식량프로그램(WFP)과 국경없는의사회(MSF)의 수송기들은 미군들을 실어나르는 수송기의 이착륙 때문에 착륙이 거부돼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기수를 돌려야했다(1 17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1 20일자 영국 <텔레그라프>)’는 이야기도 분명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나마 운이 좋은 사람들은 간간히 헬리콥터에서 떨어뜨려주는 빵과 물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고마움과 안도감보다는 인간적인 모멸감으로 인한 분노만 키울 뿐이다. “우리는 그들이 던져주는 뼈다귀를 받아먹는 개가 아니”(레오간의 한 아이티 남성, 1 22일자 데모크라시 나우)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점점 사람들의 인내심과 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자신과 굶주린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물과 음식을 찾아서 거리의 상점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미 그 곳에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구호보다는 공식적으로 ‘치안과 질서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미군과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총으로 무장한 채 상점과 주요 건물들을 지키고 있다. ‘아, 저들은 우리의 생명보다는 가진 자들의 재산을 지키러 왔구나’하는 배신감이 일면서 그 때부터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들고 달리는 사람들, 그걸 빼앗는 사람들, 그리고 곤봉을 휘두르고 공포탄을 쏘며 그들을 위협하거나 체포하는 군인들, 이를 취재하는 외국 기자들, 그리고 그들이 전해온 기사를 읽는 우리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아이티의 이른바 ‘약탈’과 폭력, 혼란의 본질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제 답은 간단해진다. 아이티 민중들에게 하루빨리 무장한 군대가 아니라 물과 식량과 잠자리와 의료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만 충족된다면 아이티 민중들이 굳이 상점을 털고 아귀다툼을 벌여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전해진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군과 유엔군은 그들 스스로 치안과 질서가 확보됐다고 판단한 ‘레드 존(Red Zone)’ 내에서만 구호단체들과 의료진들의 활동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에 ‘그린 존(Green Zone)’을 설정해놓은 것과 판박이다. 참 위험하다. 이는 대다수 아이티 민중들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절망감만 키울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꾸만 군대를 더 보내서 레드 존을 넓혀가는 방식으로는 어느 세월에 한 시가 절박한 아이티 민중들을 도울 수 있겠는가. 그보다는, 아이티에서 태어나고 자라오고 살아오며 스스로를 조직하고 깨우쳐온 경험을 가진 그 곳의 풀뿌리 활동가들과 주민들 스스로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식이다. 아이티 국민들 대다수가 반감을 갖고 있는 외국 군대가 해답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엔은 왜 그들을 활용하지 않는가? 그들이 쫓겨난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빈민들이라서? 만약 그래서라면 미국과 유엔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아이티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용했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막 원고를 송고하려고 인터넷 창을 열자, 한국 정부도 다음 달 2일 국무회의를 열어 아이티에 220여명의 평화유지활동(PKO) 병력을 파견하는 내용의 파병동의안을 확정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뜬다. 이참에 약삭빠르게 묻어가려는 건지, 아니면 무식한 건지 모를 일이다. 가슴이 답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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